고추 밭에서 열매가 갑자기 떨어지거나 꼭지가 검게 썩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 속상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증상은 병해충 때문이 아니라 생리장해에서 비롯된 경우가 대부분이며, 핵심 원인은 웃거름 관리에 있습니다. 농촌진흥청의 2023년 연구에 따르면 웃거름 시기를 놓친 고추는 낙과율이 평균 23.7% 증가하고, 꼭지썩음 발생률은 41.2%까지 치솟습니다. 올바른 웃거름 관리만으로도 이 두 가지 문제를 90% 가까이 줄일 수 있습니다.
고추 낙과, 질소 비료가 오히려 독이 되는 이유
많은 분들이 웃거름 하면 가장 먼저 질소 비료를 떠올리지만, 고추는 영양생장(줄기·잎 자람)과 생식생장(꽃·열매 맺음)이 동시에 진행되는 작물이라 질소가 과다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납니다. 질소가 많아지면 식물체 내에서 옥신이라는 생장호르몬이 과다 생성되고, 이 옥신이 에틸렌 생성을 촉진해 결국 열매를 떨어뜨립니다.
실제로 전남 영암의 한 농가에서는 요소비료 20kg을 한 번에 줬다가 낙과 피해를 본 사례가 있습니다. 웃거름의 핵심은 균형입니다. 질소, 인산, 칼리 외에도 칼슘과 붕소, 마그네슘 같은 미량요소가 고루 들어가야 합니다. 특히 칼슘은 꼭지썩음과 직결되므로 반드시 신경 써야 합니다.
토양 EC부터 확인하자, 웃거름 줘도 낙과가 계속될 때
웃거름을 제때 줬는데도 낙과가 멈추지 않는다면 토양 상태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3년 전 경북 의성의 한 농가에서 정석대로 웃거름을 3회 분할해서 줬는데도 낙과가 계속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원인은 토양 EC(전기전도도)가 4.5dS/m까지 치솟은 데 있었습니다.
고추의 적정 EC는 1.5-2.0dS/m입니다. 이 범위를 넘어가면 뿌리가 양분을 흡수하는 능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웃거름을 준 후 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염류가 집적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 가장 먼저 할 일: 토양 EC를 측정해보세요. 간이 EC 측정기는 3만 원 정도면 구매 가능하니 하나쯤 준비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 EC가 정상 범위라면: 질소 결핍이나 마그네슘 부족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웃거름 후 1주일 이내에 비가 오지 않으면 인위적인 관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료 성분이 토양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 염류 집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우스 같은 시설재배의 경우 빗물에 의한 염류 세척이 안 되므로 EC 측정기를 활용해 토양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게 좋습니다.
꼭지썩음, 농약으로 안 잡히는 생리장해 해결법
작년 가을 강원도 횡성의 한 고추 재배 단지에서 열매의 70% 이상이 꼭지가 검게 변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농장주는 웃거름도 잘 줬고 병해충 방제도 철저히 했다고 말했지만, 문제는 칼슘 비료를 전혀 주지 않고 질소, 인산, 칼리 위주로만 웃거름을 준 데 있었습니다.
고추 열매가 커지면서 칼슘 요구량은 급격히 증가합니다. 그런데 칼슘은 식물체 내에서 이동성이 매우 낮은 원소입니다. 한 번 조직에 고정되면 다른 부위로 옮겨가지 않기 때문에 새로 자라는 열매나 어린 잎에 칼슘 부족 증상이 먼저 나타납니다. 꼭지 부분이 검게 썩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이건 농약으로 막을 수 있는 병이 아니라 생리장해입니다.
칼슘 엽면시비 타이밍과 주의사항
칼슘을 웃거름으로 줄 때는 엽면시비를 병행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 시비 시간: 해가 진 후나 흐린 날 오후 4시 이후에 해야 증발을 막고 잎에 오래 머물게 할 수 있습니다.
- 농약 혼용 시 주의: 칼슘 비료는 다른 약제와 섞이면 앙금이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드시 프리믹스 테스트를 해보고 사용해야 분무기를 막거나 잎에 약해를 입히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칼슘을 많이 준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칼슘 과다는 오히려 마그네슘과 칼륨의 흡수를 방해해 또 다른 생리장해를 유발합니다. 토양 분석을 기반으로 칼슘:마그네슘:칼륨의 비율을 5:1:2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웃거름 시비법, 표면 살포는 그만
가장 흔한 실수는 비료를 흙 위에 그냥 뿌리는 표면 살포입니다. 이렇게 하면 비료 성분이 공기 중에 휘발되거나 빗물에 쓸려갑니다. 특히 요소비료는 표면 시비 시 암모니아 가스로 전환돼 30-40%가 손실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올바른 시비법은 ‘줄 시비’ 또는 ‘구멍 시비’입니다. 1. 고추 줄기에서 10-15cm 떨어진 곳에 골을 파거나 구멍을 냅니다. 2. 비료를 넣은 뒤 흙을 덮어줍니다. 3. 이렇게 하면 비료가 뿌리 근처에 오래 머물러 흡수율이 높아집니다.
실제로 줄 시비를 한 농가와 표면 살포를 한 농가의 수확량 차이는 평균 15-20%에 달합니다. 귀찮더라도 이 방법을 꼭 적용해보시길 권장합니다.
고추 웃거름 3-4회 분할 시비, 수확 후에도 계속
고추는 얕게 뿌리가 퍼지는 작물이라 한 번에 많은 양분을 흡수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7-10일 간격으로 나눠서 주는 게 효과적입니다. 농촌진흥청의 표준 재배법에 따르면 고추 웃거름은 3-4회로 나눠서 시비하는 게 기본입니다.
- 1차: 정식 후 20-25일
- 2차: 1차 수확 후
- 3차: 2차 수확 후
- 4차: 필요에 따라 추가
첫 수확에 만족해서 웃거름을 게을리하면 2차 수확량이 급감합니다. 고추는 수확 후에 새로운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수확이 끝났다고 방심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장마철 웃거름 관리, 이렇게 대비하세요
장마철에는 웃거름 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합니다.
- 장마 시작 전: 웃거름을 미리 주는 게 좋습니다.
- 장마 끝난 후: 질소 성분이 유실됐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추가로 웃거름을 보충해야 합니다.
- 비료 선택: 장마 후에는 요소비료보다 복합비료를 사용하는 게 안전합니다. 요소비료는 장마 후 고온에서 급속히 분해돼 오히려 장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가 온 후 오히려 좋은 효과를 볼 때가 많습니다. 비가 오면 토양 속에 녹아 있던 비료 성분이 뿌리까지 잘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장마처럼 계속 비가 오면 질소 성분이 유실될 수 있으니 장마가 끝난 후 추가로 웃거름을 주는 게 좋습니다.
웃거름용 비료 선택, 이 기준만 기억하세요
농자재 마트에 가면 다양한 비료들 중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막막할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은 성분 함량입니다.
- 착과기 이후: 칼리(칼륨) 함량이 질소보다 높은 제품을 선택하는 게 기본입니다.
- 미량요소 확인: 칼슘, 붕소, 마그네슘, 아연이 포함되어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 질소 형태: 고추는 질산태 질소를 더 선호합니다. 가능하면 질산태 질소 비율이 70% 이상인 제품을 고르는 게 좋습니다. 암모니아태 질소가 많으면 뿌리 주변 pH가 낮아져 뿌리 활력이 떨어집니다.
경험상 유기질 비료를 기반으로 하고 필요에 따라 화학 비료를 보충하는 방식이 가장 안정적입니다. 유기질 비료는 분해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토양 물리성을 개선하고 미생물 활동을 촉진합니다. 화학 비료는 즉효성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토양을 산성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Q. 웃거름 줬는데 비가 와서 효과가 없을 것 같아요.
비가 온 후 오히려 좋은 효과를 볼 때가 많습니다. 비가 오면 토양 속에 녹아 있던 비료 성분이 뿌리까지 잘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장마처럼 계속 비가 오면 질소 성분이 유실될 수 있으니 장마가 끝난 후 추가로 웃거름을 주는 게 좋습니다.
Q. 칼슘만 많이 주면 꼭지썩음이 완전히 사라지나요?
아쉽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칼슘 과다는 오히려 마그네슘과 칼륨의 흡수를 방해해 또 다른 생리장해를 유발합니다. 토양 분석을 기반으로 칼슘:마그네슘:칼륨의 비율을 5:1:2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Q. 웃거름 후에도 낙과가 계속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장 먼저 토양 EC를 확인해보세요. 염류 집적으로 뿌리가 양분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C가 정상 범위라면 질소 결핍이나 마그네슘 부족을 의심해볼 수 있습니다. 간이 EC 측정기로 토양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웃거름 관리는 단순히 비료를 뿌리는 작업이 아니라 타이밍과 방법, 양을 정확히 조절해야 하는 기술입니다. 참고 자료에서 확인된 수치와 사례를 바탕으로 볼 때, 올바른 웃거름 관리만으로도 낙과율과 꼭지썩음 발생률을 90% 가까이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토양 EC를 측정하고, 분할 시비와 줄 시비 방법을 적용해보시길 권장합니다.